송원배 대표 어느 詩人의 부동산 재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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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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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6-14 17:08
비정규직이어서 연애도 포기했다는 이십 대, 집 마련이 어려워서 결혼 도 못 하겠다는 삼십 대, 우리의 교육제도에서 아이를 못 기르겠다며 아 이 낳기를 포기한 사십 대….
행복을 갈구하면서 현실의 경제적 핑계로 행복한 삶을 포기하려 한 다. 그냥 포기해버리면 행복한 삶을 살게 될까.
행복은 누구와 비교하거나 경제력으로 평가할 수 있는 척도가 아닌데 도 말이다.
안도현 시인의 「재테크」라는 시다.
(중략)
한 평 남짓 애벌레를 키우기로 작심했던 것
또 스무 날이 지나 애벌레가 나비가 되면 나는 한 평 얼갈이배추밭의 주인이자 나비의 주인이 되는 것
그리하여 나비는 머지않아 배추밭 둘레의 허공을 다 차지할 것이고 나비가 날아가는 곳까지가, 나비가 울타리를 치고 돌아오는
그 안쪽까지가
모두 내 소유가 되는 것
완주에 작업실을 둔 시인은 작업실 담장 밑, 한 평 남짓한 땅에 재미 삼아 얼갈이배추 씨앗을 뿌렸고 드디어 잎사귀가 자라났다. 마침 애벌 레들이 얼갈이 배춧잎을 갉아먹기 시작하자 동네 어르신들은 ‘약을 안 하냐’며 핀잔을 줬다. 그래도 시인은 애벌레를 키우는 것도 ‘농사’라고 우기며 약을 치지 않았다. 결국 애벌레들은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 게 됐다. 시인은 한 평 남짓 땅에 얼갈이배추를 키운 것이 아니라 ‘나비’ 를 키운 셈이다. 시인은 이 상황을 시로 적고 제목을 「재테크」라 붙였다.
시인의 재테크는 참으로 대단하다. 배추밭의 주인이자 나비를 키워낸 주인으로서 나비가 날아갈 그 허공은 누구의 소유일까. 이런 욕심이나 호기는 얼마든지 부려도 좋지 않을까. 나비가 날아가는 곳, 울타리의 경 계도 담장도 없는 허공을 소유할 수 있는 특별함이 있지 않은가.
결국 시인은 한 평 땅에 당장 먹거나 시장에 팔 수 있는 얼갈이배추가 아니라 ‘나비’로 상징되는 ‘꿈’을 키운 것이다. 꿈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 든다. 나비를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행복으로 계산하면 제법 가치가 있어 보인다. 행복은 때로 많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란 걸 생각 한다면 시인의 ‘재테크’는 괜찮은 수익을 낸 셈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재테크를 권하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경 제력이 그 사람의 능력이라고 평가하려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것도, 좋은 직장에 취직을 원하는 것도, 결국은 돈을 벌고자 하는 노력일 것이다.
20·30세대들이 사회와 직장에서 경험과 경륜을 쌓을 시간에 재테크 열풍에 빠져 있으며 뉴스는 주식, 가상화폐, 부동산 투자 등 무엇이라 도 하지 않으면 행복이라는 열차에서 낙오할 것 같은 조바심으로 가득 하다.
물론 돈이 많으면 우리의 삶은 편리할 것이다. 당연히 재테크도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기술이다. 유태인들은 어려서부터 경제 공부와 재테크에 대한 지식을 쌓는다고 하니 제대로만 사용한다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 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편리함과 풍요가 행복을 가져오 진 않는다.
이즈음에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생각해볼 일이다. 어릴 때는 부모님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을 얻기 위해 무모하게 용기를 내 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어른이 된 후 우리는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돈과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오늘도 불확실한 미래를 사는 데 돈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우리 사회 는 왜곡된 행복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더불어 공존해야 하는 시대 적 책임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삶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나눔의 문화를 권장하면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자기를 위해 돈을 썼을 때는 아주 잠깐 행복하지만 타인을 위하는 일 에 돈을 썼을 때는 그 행복감이 훨씬 더 크고 오래간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돈이 아니더라도 가치 있는 일을 했을 때 더 행복하며 함 께 상생하는 방법을 찾았을 때 더 큰 성과의 시너지가 발생한다는 것도 안다. 이웃에게 배추를 나누었더니 맛있는 음식이 한 대접 돌아오고 김 밥 한 줄 맛보라고 나누었더니 야채가 한 바구니 돌아오고 이렇게 나누 다 보면 귀한 사람을 얻게 되는 것. 세상은 점점 사람 사는 인정으로 넘 치게 되고, 좋은 이웃을 얻는 것은 인생의 큰 행복이다.
매번 발표되는 부동산정책을 보면 국민들이 원하는 진정한 행복이 무 엇인지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공존하는 법,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깊이 고민하지 않고 옆사람들이 약을 치라고 하면 언젠가 아름 다운 나비로 자랄 애벌레를 죽이기 위하여 그저 약만 치고 있는 것은 아 닌지, 시인의 재테크를 보며 반문해본다.
행복을 갈구하면서 현실의 경제적 핑계로 행복한 삶을 포기하려 한 다. 그냥 포기해버리면 행복한 삶을 살게 될까.
행복은 누구와 비교하거나 경제력으로 평가할 수 있는 척도가 아닌데 도 말이다.
안도현 시인의 「재테크」라는 시다.
(중략)
한 평 남짓 애벌레를 키우기로 작심했던 것
또 스무 날이 지나 애벌레가 나비가 되면 나는 한 평 얼갈이배추밭의 주인이자 나비의 주인이 되는 것
그리하여 나비는 머지않아 배추밭 둘레의 허공을 다 차지할 것이고 나비가 날아가는 곳까지가, 나비가 울타리를 치고 돌아오는
그 안쪽까지가
모두 내 소유가 되는 것
완주에 작업실을 둔 시인은 작업실 담장 밑, 한 평 남짓한 땅에 재미 삼아 얼갈이배추 씨앗을 뿌렸고 드디어 잎사귀가 자라났다. 마침 애벌 레들이 얼갈이 배춧잎을 갉아먹기 시작하자 동네 어르신들은 ‘약을 안 하냐’며 핀잔을 줬다. 그래도 시인은 애벌레를 키우는 것도 ‘농사’라고 우기며 약을 치지 않았다. 결국 애벌레들은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 게 됐다. 시인은 한 평 남짓 땅에 얼갈이배추를 키운 것이 아니라 ‘나비’ 를 키운 셈이다. 시인은 이 상황을 시로 적고 제목을 「재테크」라 붙였다.
시인의 재테크는 참으로 대단하다. 배추밭의 주인이자 나비를 키워낸 주인으로서 나비가 날아갈 그 허공은 누구의 소유일까. 이런 욕심이나 호기는 얼마든지 부려도 좋지 않을까. 나비가 날아가는 곳, 울타리의 경 계도 담장도 없는 허공을 소유할 수 있는 특별함이 있지 않은가.
결국 시인은 한 평 땅에 당장 먹거나 시장에 팔 수 있는 얼갈이배추가 아니라 ‘나비’로 상징되는 ‘꿈’을 키운 것이다. 꿈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 든다. 나비를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행복으로 계산하면 제법 가치가 있어 보인다. 행복은 때로 많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란 걸 생각 한다면 시인의 ‘재테크’는 괜찮은 수익을 낸 셈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재테크를 권하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경 제력이 그 사람의 능력이라고 평가하려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것도, 좋은 직장에 취직을 원하는 것도, 결국은 돈을 벌고자 하는 노력일 것이다.
20·30세대들이 사회와 직장에서 경험과 경륜을 쌓을 시간에 재테크 열풍에 빠져 있으며 뉴스는 주식, 가상화폐, 부동산 투자 등 무엇이라 도 하지 않으면 행복이라는 열차에서 낙오할 것 같은 조바심으로 가득 하다.
물론 돈이 많으면 우리의 삶은 편리할 것이다. 당연히 재테크도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기술이다. 유태인들은 어려서부터 경제 공부와 재테크에 대한 지식을 쌓는다고 하니 제대로만 사용한다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 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편리함과 풍요가 행복을 가져오 진 않는다.
이즈음에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생각해볼 일이다. 어릴 때는 부모님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을 얻기 위해 무모하게 용기를 내 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어른이 된 후 우리는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돈과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오늘도 불확실한 미래를 사는 데 돈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우리 사회 는 왜곡된 행복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더불어 공존해야 하는 시대 적 책임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삶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나눔의 문화를 권장하면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자기를 위해 돈을 썼을 때는 아주 잠깐 행복하지만 타인을 위하는 일 에 돈을 썼을 때는 그 행복감이 훨씬 더 크고 오래간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돈이 아니더라도 가치 있는 일을 했을 때 더 행복하며 함 께 상생하는 방법을 찾았을 때 더 큰 성과의 시너지가 발생한다는 것도 안다. 이웃에게 배추를 나누었더니 맛있는 음식이 한 대접 돌아오고 김 밥 한 줄 맛보라고 나누었더니 야채가 한 바구니 돌아오고 이렇게 나누 다 보면 귀한 사람을 얻게 되는 것. 세상은 점점 사람 사는 인정으로 넘 치게 되고, 좋은 이웃을 얻는 것은 인생의 큰 행복이다.
매번 발표되는 부동산정책을 보면 국민들이 원하는 진정한 행복이 무 엇인지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공존하는 법,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깊이 고민하지 않고 옆사람들이 약을 치라고 하면 언젠가 아름 다운 나비로 자랄 애벌레를 죽이기 위하여 그저 약만 치고 있는 것은 아 닌지, 시인의 재테크를 보며 반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