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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경 회장 [CEO 칼럼] 지식과 지혜의 베이스캠프,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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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08회 작성일 23-05-31 14:49
회사 6층에 사무실이 비었다. 세를 놓으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직원들을 위한 문화공간이 어떨까 해서다. 운동 공간, 휴게시설 등등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회사 내 서재를 만들기로 했다. 책장을 짜 넣고 임직원들로부터 책을 기증받았다. 한꺼번에 책을 구매할 수도 있지만, 회사 서재인 만큼 임직원들의 책으로 채우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았다.

책 기증이 줄을 이었고, 그중에는 수십 권을 내놓는 경우도 있었다. 한 신입사원은 자신이 읽고 아끼는 책 20여 권을 기증했다. 소설, 에세이, 인문서, 실용서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있어 그의 독서력을 짐작게 했다. 평소 신입사원답지 않은 내공을 보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물교아(萬物敎我)'를 강조하는 한 임원 역시 30여 권의 책을 가져왔다. 책 곳곳에 밑줄을 긋고 메모한 흔적이 있었는데 그 흔적을 쫓으니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서재 관리를 자처하는 직원도 나왔다. 그는 책 관리는 물론, 회사 단톡방에 '오늘의 책'이라는 코너를 만들어 서재에 들어온 좋은 책을 소개했다. 아침이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오늘의 책'이 될 정도다.

필자도 기증 대열에 합류했다. 기증할 책을 찾다 보니, 책에 얽힌 사연도 떠올랐다. 조용헌의 '휴휴명당'(불광출판사 펴냄)이다. 작가가 30년간 강산을 발로 누빈 명당 답사기. 몇 해 전 정년을 앞둔 지인에게 선물한 책이기도 하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책에 나오는 명당을 다니며 '힐링하시라'는 의미였다. 그도 필자의 뜻을 이해했던지 '휴휴명당 투어'를 자신의 버킷 리스트에 넣고 주말이면 지인들과 함께 다녔다고 한다. 나중에 신문을 보다 우연히 그의 대표 취임 소식을 확인했다. 축하 문자를 보내자 "보내준 책 덕분에 마음을 비우고 좋은 곳을 다녔더니, 좋은 일이 생긴 것 같다"고 답이 왔다. 명당이나 좋은 기운을 찾아다녀 보라고 한 것이 아니다.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책은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우리 삶의 베이스캠프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서재의 마법'(김승·김미란·이정원 지음, 미디어숲 펴냄)이란 책에서 작가들은 "지식의 가치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식사회에서 서재는 삶의 방향을 탐색하고 방법을 연구하고 다음을 위해 준비를 하는 베이스캠프와 같은 곳"이라며 "누구에게나 인생을 위한 베이스캠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서재는 '지혜의 베이스캠프'이기도 하다. 앞으로 지식사회를 넘어서는 지혜의 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예견된다. 기계(로봇)나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지혜'이기 때문이다. 책은 지식도 지식이지만, 우리에게 지혜를 준다. 당연히 서재는 지혜의 베이스캠프다.

필자는 회사 서재의 단골이다. 서재에 들어갈 때마다 '책의 등'이 눈에 들어온다. 책의 등을 보면 든든하다. 고영민 시인은 그의 시(詩) '책의 등'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책꽂이에 책들이 꽂혀있다/ 빽빽이 등을 보인 채 돌아서 있다/ 등뼈가 보인다.// 등을 보여주는 것은/ 읽을거리가 있다/ 아버지가 그랬다/ 어머니가 그랬다(중략)/ 한 시대와 역사가 그랬다.' '책의 등'이 모인 곳이 서재다. 정상으로 가기 전에 충전하고 준비하는 지식과 지혜의 베이스캠프! 이제 말복이 지척이다. 가을도 머지않았다. '책의 등'뿐만 아니라 정상으로 향할 사람들의 등이 북적이는 지식과 지혜의 베이스캠프를 기대해 본다.

이호경 대영에코건설(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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